최근 개봉해서 엄청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스파이더 맨-노 웨이 홈]은 마블이라는 프랜차이즈가 2020년대 대중 문화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사실 이 프랜차이즈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마블 코믹스는 거의 70여년의 연혁을 자랑하지만, 국내에서는 2008년 영화 [아이언맨]부터 시작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CU:Marvel Cinematic Universe)를 통해서 더욱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극장가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당연히 그 인기는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전 세계에 걸친 것으로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헐크 내지는 스파이더맨 같은 소수 캐릭터들에게만 국한된 마블 코믹스의 관심이 다른 캐릭터들-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앤트맨-까지도 확대 되었습니다. 이후 마블 유니버스의 인기는 단순히 영화 뿐만 아닌 코믹스, 관련 굿즈 등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보드게임 분야도 예외는 아닙니다. 2010년대 초반부터 마블은 서서히 떠오르는 영화 버전의 인기에 힘입어 자사의 캐릭터들의 게임화를 부지런히 이뤄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일어나기 전인 90년대 부터 마블은 자사의 최고 인기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을 여러 게임에 이식해서 선보인 바 있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서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사례 중 제일 괄목할 만한 사례는 미국의 어퍼덱 엔터테인먼트의 '레전더리' 시리즈입니다. 컬렉터블 카드와 악세서리를 위주로 유통해온 어퍼덱은 컬렉터블 카드 유통 사업의 특성상 여러 코믹스나 영화 IP 재산권자와 협업을 해왔는데, 그러던 중 게임 디자이너인 데븐 로우가 고안한 '레전더리' 시스템에 마블 캐릭터를 입혀 2012년 [레전더리:마블 덱 빌딩 게임]을 출시했습니다.
어퍼덱의 [마블 덱 빌딩 게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덱빌딩 시스템을 협력으로 구현해서 다가오는 적들을 처리하고 최종보스를 물리쳐야하는 게임 방식은 마블의 컨셉과 잘 맞아 떨어졌으며, 당연히 수많은 확장팩과 스탠드 얼론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이 시리즈는 프레데터, 에일리언, 007같은 영화 프랜차이즈로 이어집니다)
이후 마블의 보드게임화는 계속 이어집니다. 피규어 분야에서 마블/DC를 비롯한 여러 판권자를 갖고 있는 NECA의 자회사인 위즈키즈는 마블 영화 시리즈가 일궈낸 경천동지 이전부터 이어져온 시리즈인 '히어로클릭스', 그리고 후신인 '다이스 마스터즈'를 통해서 마블을 등에 업고 홍보를 최대한 해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아스모디의 경우 보드엠을 통해서 출시된 [인피니티 건틀렛:러브 레터 게임], [스플렌더 마블], [도블 마블]처럼 인기작의 리테마 혹은 변형 게임들을 만들어 왔고요.
국내에도 출시된 마블 IP 게임들
한편 IP의 게임화가 가능한 (게임 전문 회사가 아닌) 2차 저작권자가 마블 IP를 가져오고 게임 개발에 최적화된 게임 퍼블리셔와의 협업으로 게임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업체가 모노폴리의 다양한 리테마 버전, 그리고 우리에게 친숙한 [텔레스트레이션]을 만든 제작사인 The OP입니다.
The OP의 경우 자사가 연계하는 프랜차이즈를 기존 게임에 연결해서 출시를 하는 편이었고, 그 결과물로 나온 제품들이 [먼치킨 마블], [스매시 업 마블] 같은 게임들이었습니다. (물론 해당 게임들은 마블뿐만이 아닌 해리 포터, 디즈니 등의 테마로도 나왔습니다) 특히 올해 말 역시 미국회사인 록슬리와의 협업으로 출시한 [마블 다이스 스론]의 어마어마한 킥스타터 성공은 보드게임계 내외로 두루두루 회자되었습니다.
미국의 록슬리와, IP 저작권자인 The OP가 함께 만든 [마블 다이스 스론]
게임 전문 회사가 아닌 IP 판권자가 게임 업체랑 협업을 하는 경우가 또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캐나다 회사인 스핀마스터입니다. 두 명의 대학 동창에 의해 94년 설립된 스핀마스터는 애초에 완구 회사를 표방했고 (그렇다해도 최근에는 보드게임 관련 라인업이 많아지긴 했습니다), 그들의 작품 중 'Earth Buddy' (모종이 심어져 있어서 물에 담그면 머리가 자라나는 인형)이 큰 성공을 거둔 뒤 투자에 성공하면서 계속적으로 완구 히트작들을 내놓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유럽 전역에 유통사무소를 세우는등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스핀마스터는 The OP보다 규모는 더 크지만 완구 업체이기 때문에 응용할 수 있는 IP의 판권도 (아무래도 소구할 수 있는 연령대에 맞춰져서) 적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블은 큰 지분이었기에, 힛트작이었던 [5분 던전]의 마블 버전인 [5분 마블], 자체로 개발한 마피아 게임인 [헤일 하이드라] 같은 게임들을 출시해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해당 게임들도 모두 한글판이 출시 되었습니다.)
특히 스핀마스터의 마블 게임들은 마블 IP의 게임 사용권을 가져와서 코믹스 아트워크의 제활용이 아닌 게임을 위해 오리지널로 그려진 아트워크를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마블 게임들은 마블 코믹스의 아트워크를 그대로 활용해서 게임에 도입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019년, 스핀마스터는 마블을 통한 좀 더 본격적인 전략 게임(이라고 해봤자, 어린이 게임들보다는 살짝 더 전략적인 패밀리 플러스 게임 수준) 제작을 위해 CMON과 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킥스타터 크라우드 펀딩에 도가 튼 CMON이니만큼 애초부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가족용 초급 전략 게임으로 기획된 게임이 바로 마블 유나이티드입니다.
안드레아 치아르베시오와 에릭 M 랭
마블 유나이티드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인 안드레아 치아르베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이 잘 아는 캐나다 출신의 작가인 에릭 M 랭의 공동 디자인입니다. 치아르베시오는 2007년 그 유명한 게임 [킹스부르크]로 혜성같이 등장했었고 백빌딩 게임인 [하이퍼보리아], 독일 제작사인 왓츠유어게임즈의 힛트작 [시뇨리에]등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게임 중 [리처드 1세]는 좋은 가능성을 가진 게임이었고 이를 엿본 CMON이 2017년 리메이크 버전인 [사자심왕 리처드]를 다시 만들면서 치아르베시오와 CMON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먼치킨의 보드게임 버전인 [먼치킨 던전]을 함께하면서 에릭 M 랭과의 공동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마블 유나이티드는 그가 CMON과 내놓는 세 번째 게임이었습니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블 유나이티드는 기획단계서부터 SD 형태의 캐릭터들을 활용한 게임 전용 오리지널 아트워크를 표방했고, 그 덕분에 새로운 작화가가 필요했습니다. 여기에 투입된 작가는 파리 출신의 에두와르 기튼이었습니다.
마블 유나이티드
기튼은 CMON 도약의 기회가 된 '좀비사이드' 프랜차이즈때무터 함께 해왔고, 한글판으로도 출시될 '좀비사이드 2판'서부터는 다른 작가들과의 공동 작업이 아닌, 단독 아티스트로 활약했습니다. 기튼은 마블의 레퍼런스를 십분 활용하면서 SD 특유의 귀염스러운 이미지와 마블 캐릭터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아트워크들을 구현했습니다.
2019년 진행된 마블 유나이티드의 킥스타터는 약 22,000명의 후원자를 모으면서 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20년 후원자들에게 해당 제품들이 배송된 이후 평가는 적절한 수준의 가족 게임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CMON과 스핀마스터는 마블의 또 다른 프랜차이즈인 엑스맨을 테마로 한 [엑스멘 : 마블 유나이티드]로 다시 25,000명의 후원자를 모았습니다. 사실 어벤저스의 캐릭터들과 엑스멘의 캐릭터들의 교점이 분명히 있음에도, 영화화 판권으로 인해 분리된 느낌이 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게임 제작진은 애초에 이를 감안해서 코믹스 기반의 게임 프랜차이즈임에도 첫 번째 '마블 유나이티드'의 성공 시 이를 이어갈 복안으로 '엑스맨'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정말로 잘 먹힌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블 유나이티드의 킥스타터 페이지
게임성에 있어서 마블 유나이티드의 성공 요인은 빠른 진행, 그리고 어렵지 않은 규칙으로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접근성, 그리고 캐릭터의 다양함이었습니다. 후자의 경우 확장팩을 통해서 그 다양함의 반경이 넓어질 수 있는데, 그야말로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마블이니 그 효과는 배가되었고요.
캐릭터들은 빌런 캐릭터 한 명과 각자 운용할 히어로 캐릭터들을 정합니다. 게임은 선택한 빌런에 따라 세팅이 달라지며, 빌런의 차례마다 진행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게임의 목표는 빌런을 인원수에 따라 정해진 체력치 미만으로 떨어뜨려 쓰러트리는 것입니다.
마블 유나이티드에 포함된 피규어들
게임은 '스토리라인'이라 불리는 카드의 열에 히어로 3장당 빌런 1장씩의 카드를 놓으면서 진행합니다. 이런 류의 게임들이 많이 그렇듯이 승리 조건이 빌런의 처치뿐이라면, 패배 조건은 빌런의 승리 조건 외에도 히어로나 빌런의 카드 소진 전까지라는 더 까다로운 조건이 따라갑니다. 마블 유나이티드 본판에는 레드 스컬, 울트론, 태스크마스터 이렇게 3종의 빌런이 있어서 게임을 다채롭게 해줍니다.
마블 유나이티드의 독특한 점은 자신의 차례 전에 놓인 동료의 카드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협력 게임다운 설정, 그리고 게임의 목표가 되는 빌런 처치를 위해서 필요한 3가지 조건 중 두 가지를 달성해야 하되,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 조건이 달성되는 순간 게임의 난이도가 더 어려워 진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무작위로 깔리는 장소 카드는 그 자리에서 행동을 마치는 히어로에게 여러가지 특수 효과를 주므로 빡빡한 협력 상황에서 해갈이 되고 어떤 장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변주를 줍니다.
인 투 더 스파이더 버스의 피규어들
마블 유나이티드의 한글판은 애초에 본판부터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상술한 12월의 영화 개봉에 맞추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공동진행으로 현재 출시 가능한 확장 4종 중 하나인 인투 더 스파이더 버스와 함께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본 확장에는 스파이더 맨 세계관의 히어로 캐릭터 3종 -스파이더맨, 고스트 스파이더, 마일스 모랄레스와 스파이더맨의 숙적인 그린 고블린이 빌런으로 들어있습니다. 그외 뉴욕 전역의 명소들이 장소 카드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판의 구성품과 이 확장팩을 섞어서 다른 플레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린 고블린은 꽤나 고난이도의 빌런입니다.
출시 전 있었던 이슈 중 마블 판권의 모회사인 디즈니에서 테이블탑 게임으로 유통되는 자사 캐릭터의 명칭을 -유통 국가가 음차로 캐릭터명을 표기하는 곳일 경우-영문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제약 사항은 아마 게임을 기다리셨던 분들께 가장 큰 아쉬움일 것입니다.
보드엠으로서 마블 유나이티드는 인피니티 건틀렛에 이은 두 번째 마블 게임이고, 인피니티 건틀렛 당시에는 이런 이슈가 없었기 때문에 꽤나 당혹스런 결정이긴 했습니다. 심지어 한글화 작업이 모두 끝난 시점에 전해들은 이야기였고, 이 때문에 오히려 기존의 작업을 다시 롤백해야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고 이때문에 출시가 상당히 지연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해당하는 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예외없이 적용하기 때문에 저희로서도 불가항력인 상황입니다.
다만 제작 전 샘플로 테스트를 해본 결과 표기의 느낌 자체에 아쉬움은 있을 지언정 게임 플레이에서는 큰 지장이 없었기에 게임을 즐기는 본위의 의미로서는 여전히 좋은 게임이라는 점을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마블 유나이티드의 출시는 다음 주 (1월 3일)로 예정되었습니다. 배송은 4일 경부터 진행될 예정이오나, 현재 계약 택배자인 CJ 대한통운의 파업으로 인해 택배 배송 전반이 밀리고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소의 부침이 있어서 비교적 늦게 출시되었지만, 오랜 기다림만큼이나 보드엠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시리즈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 좋은 마블 유나이티드를 기대해 주세요.